[데스크 칼럼] 메타버스는 거품이었나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상과학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메타버스 기술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의 플랫폼에 접속하면 가상의 세상을 현실처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영화 속 설정이다. 등장인물들은 현실보다 오아시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암울한 현실보다 메타버스 속 세계가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기존 서비스와 차별점 적어

4년이 지난 2022년. 메타버스는 산업계를 뒤흔드는 기술 테마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다. 회사가 아니라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출근하는 것은 기본이다. ‘게더타운’과 같은 메타버스 앱을 활용해 신입사원을 비대면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준비하는 신사업 목록에도 메타버스가 빠지지 않는다. 쇼핑, 메신저,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등에 메타버스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일상 속 메타버스는 영화 속 오아시스와 사뭇 다르다. 시장의 중심은 ‘로블록스’나 ‘제페토’처럼 가상현실(VR) 고글을 요구하지 않는 캐주얼 서비스들이다. 나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로 다른 접속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게 마케팅 포인트다. 하지만 시장에선 기존 서비스들과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인 2003년 첫선을 보인 가상현실 ‘세컨드 라이프’ 등이 구현한 기능에 메타버스라는 이름만 붙었다는 지적이다.

전문 장비를 쓰는 메타버스 서비스는 전시장에 가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메타버스 속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기술의 한계 탓이다. 현존 최고 기술인 5세대(5G) 이동통신의 한계는 4K 화질의 클라우드 게임이다. 이보다 수십 배 많은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해야 하는 메타버스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즐기는 것은 아직 무리다.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설득력 있는 활용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메타버스 열풍을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메타버스 열풍 선두 주자인 미국 로블록스의 지난 15일 종가는 28달러90센트다. 140달러에 육박했던 지난해 연말과 비교하면 주가가 5분의 1토막이 됐다. 메타버스 사업에 주력하겠다며 사명까지 바꾼 메타(옛 페이스북) 역시 같은 기간 주가가 50%가량 하락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시장이 내림세로 돌아섰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낙폭이다. 국내 시장도 다를 게 없다. 메타버스를 전면에 내건 종목들이 약세장을 맞아 줄줄이 급락하고 있다. 메타버스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신기술에 대한 환상 경계해야

정부도 신기술 테마에 대한 환상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예산 160조원을 투입하는 ‘한국판 뉴딜 2.0’을 발표하면서 2026년까지 한국을 글로벌 5위 메타버스 강국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미래 기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나무랄 순 없지만 잘 팔리는 키워드에 매몰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기술 테마가 뜨고 지는 것은 수십 년째 반복되는 일이다. 2014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시작된 인공지능(AI)처럼 대세로 자리 잡은 테마도 있지만, 2009년 급부상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유비쿼터스’ 같은 사례도 적지 않다. 한탕을 노리는 ‘기술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는 냉정한 눈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