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근로자를 채용할 때부터 재직 중, 퇴직할 때까지 단계 별로 성비 현황을 외부에 공시하는 ‘성별근로공시제’가 도입된다. 고용 과정에서 성별에 따라 차별을 둔 것으로 의심되는 기관은 근로감독을 추진한다. 성별임금격차 현황 감독도 강화한다. 또 메타버스 등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도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도 추진된다.

이기순 여성가족부 차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양성 평등정책 기본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서면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개최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심의·의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여가부는 2015년부터 시행된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관계부처와 협의해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있다. 제2차 기본계획(2018~2022년)이 여성의 고용과 사회참여를 보장하고 일·생활 균형, 남녀평등 의식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제3차 계획에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 코로나19로 심화한 돌봄부담 완화, 5대 폭력 근절을 위한 과제를 담았다.

◇공공부문부터 성별근로공시제 도입… “여전히 성별 임금·근속연수 격차 존재”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성별근로공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기업이 직원 채용부터 근로, 퇴사까지 중요 항목에 대해 성별 데이터를 외부에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채용 단계에서는 서류 합격자부터 최종 합격자까지 성비를, 근로 단계에서는 부서별·승진자·육아휴직 사용자 성비를 공개하는 식이다.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여가부는 올해 공공부문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또 여가부는 매년 상장법인·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근로자 성별임금격차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다.

여가부는 “‘공정’은 어려운 취업시장에서, 특히 청년층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나, 여전히 성별 임금격차·근속연수 격차가 존재한다”고 했다. 상장법인에서 근로자 1인당 평균 임금은 여성이 남성보다 38.1% 적고, 근속연수는 31.2% 낮다는 게 여가부 설명이다.

원인 중 하나는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로 30대부터 40대 초반 여성의 고용률이 낮은 것이다. 정부는 육아휴직 기간을 기존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리고, 중소기업 내 재택·원격근무 활성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대기업 대상 ‘동반성장 종합평가’에 협력사의 일·생활 균형 확산 지원 관련 평가범위를 확대한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진학할 때 돌봄 공백이 발생해 여성이 직장을 관두지 않도록, 교육부는 초등학교에 ‘늘봄학교’를 도입해 돌봄교실 이용시간을 오후 8시까지 연장한다. 또 아이돌봄서비스 정부지원 시간과 지원가구를 늘린다.

직원 승진도 모니터링 한다. 민간기업에 대해서는 여성임원 비율을 모니터링한다. 자산 총액 2조언 이상인 상장기업은 이사회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본시장법을 이행하는지도 감독한다.

중앙부처와 지방 공무원, 공공기관, 교원, 정부 위원회에는 여성 관리자 현황 등을 고려해 ‘공공부문 성별 대표성 제고 계획’을 수립한다. 공무원에 대해서는 양성평등한 통합균형인사제도도 지속 추진한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 검토…대선 당시 국민의힘 선대위는 반대

권력형 성범죄, 디지털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 범죄 등 5대 폭력에 대한 법·제도도 정비한다. 먼저 형법 제32장 제목 ‘강간과 추행의 죄’를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죄’로 개정을 검토한다.

형법 제297조의 강간 구성 요건은 ‘폭행협박’에서 ‘동의여부’로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현재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가 처벌 대상이지만,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상대방의 동의가 없었다면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계의 숙원 중 하나로,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 선대위 청년본부 양성평등특별위원회는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이 논란이 되자 성범죄의 근본 체계에 관한 문제이므로 반대 취지의 신중 검토 의견을 여성가족부에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위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했다. 법무부는 “학계 등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입법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포함해 성폭력 범죄처벌법 체계 전체에 대한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가부는 ‘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피해자의 과거 성이력을 증거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항 신설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같은 법을 개정해 온라인 상에서 언어적 성폭력, 성적 괴롭힘, 메타버스 등 성적 이미지를 이용하지 않은 행위로 ‘사람을 성적 대상화해 괴롭히는 표현을 한 행위’에 대한 처벌 신설을 검토한다.

기관장 등에게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보호조치를 의무화한다. 성희롱 피해자와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처분 금지 의무 신설을 추진한다. 기관장 성폭력사건 발생 시 여가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는 재발방지대책 제출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개월로 줄이고, 미제출기관에는 과태료 등으로 제재한다. 스토킹처벌법에는 스토킹범죄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담도록 개정한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대체입법 안 돼…법·제도 정비 추진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임신 전 기간 낙태를 금지한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이후 국회는 대체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 여가부는 법무부, 보건복지부, 식약처와 함께 인공임신중절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기로 했다. 또 인공임신중절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강화한다.

2021년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5~44세 여성의 인공임신중절률은 3.3%이다. 사회경제적 사유가 주된 원인을 차지했다. 식약처는 임신중절의약품의 불법 유통 단속을 강화한다.

◇성인지적 관점 영화·드라마 우수 콘텐츠 홍보

여가부는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남녀 간 의식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사회 통합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발굴하기로 했다. 국민통합위원회와 함께 실태조사를 벌여 갈등 현황을 파악하고 분석하기로 했다. 또 지역 양성평등센터를 기반으로 청년 공감대를 높이는 사업을 추진한다.

대중매체와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성차별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언론인·방송인 등 관계자를 대상으로 성평등 미디어 교육을 실시한다. 양성평등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고, 성인지적 관점의 영화·드라마 등 우수 콘텐츠를 홍보하는 사업도 추진한다.

◇국가성평등지수 소폭 상승…의사결정 분야 가장 저조

여가부는 2021년 기준 국가성평등지수도 함께 공개했다. 2021년 국가성평등지수는 75.4점으로 2020년(74.9점) 대비 0.5점 상승했고, 지역성평등지수는 77.1점으로 2020년(76.8점) 대비 0.3점 올랐다.

분야별로는 보건 분야(96.7점) 성평등 수준이 가장 높으며, 의사결정 분야(38.3점)가 가장 낮게 나타났다. 의사결정 분야는 4급 이상 공무원 여성 비율 및 국회의원 여성 비율이 증가한 영향으로 2020년 36.4점에서 2021년 38.3점으로 8개 분야 중 가장 크게 상승했지만, 여전히 가장 저조한 분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