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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P2E에 찬물 한 바가지? 헌법재판소, 게임머니 환전 금지 합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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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석(우티) 2022-03-02 17:05:23

 

# 불법 작업장과 '그렇고 그런' PC방의 헌법소원

A 일당은 법원으로부터 벌금 4,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타인의 명의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게임 아이디를 만들어 2,635억 원 상당의 게임머니를 거래했기 때문이다. A 일당을 더러 게이머들은 '작업장'이라고 부른다. 이 작업장에서는 약 19,864개의 계정이 개설되었다. 

부산에서 PC방을 하는 B 씨는 징역 1년 4개월을 받았다. 그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운영하던 PC방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나 <오버워치>를 제공하지 않았다. B의 PC방은 길을 걷다 흔히 만나는 '그렇고 그런' 곳으로 포커, 바둑이, 맞고 등을 서비스했다. B 씨는 손님들에게 현금을 받고 게임머니를 충전해 주거나, 획득한 게임머니를 환전해줬다.

A 일당과 B 씨는 자신의 유죄 판결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각각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게임산업법 제32조 1항 7호가 헌법과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누구든지 게임물의 이용을 통해 획득한 유·무형의 결과물(점수, 경품,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가상의 화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게임머니 및 대통령령이 정하는 이와 유사한 것)을 환전 또는 환전 알선하거나 재매입을 업으로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A와 B는 해당 법 조항이 죄형 법정주의와 포괄 위임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봤다. 해당 법이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난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따라서 자신들을 처벌한 법은 헌법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다. 

A는 2017년, B는 2020년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렇고 그런' PC방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출처: 게임물관리위원회)

 

#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지난 2월 28일, 헌법재판소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렸다. 게임머니의 환전을 금지하는 현행 법이 합헌이라는 것이다. 재판관 전원이 소수의견 없이 같은 의견을 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2017헌바438 등)

헌재는 "게임물의 내용과 이용 방식을 규제하는 게임산업법 및 기타 관련법 등을 토대로 그 구체적인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 이 사건 금지조항은 죄형법정주의와 포괄위임금지원칙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서 "게임산업의 기반 또는 건전한 게임문화를 훼손하는 행위를 방지하는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이를 위해 위법한 게임물 이용을 조장하는 게임결과물 환전업 등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헌재는 "위법·탈법적인 게임결과물의 환전업 등은 게임물의 유통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형사처벌이 과도한 제재라고 단정할 수 없어 침해의 최소성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결정문에는 "게임물의 유통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를 방지하는 것은 게임산업의 진흥과 건전한 게임문화의 확립에 필요한 기초가 되는 공익이며 이에 비해 청구인들의 직업수행의 자유가 제한되는 정도가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된다"고 나와 있다.

그러니까 헌재는 게임머니 환전 금지가 헌법정신에 부합한다고 본 셈이다. 

 

헌법재판소

 

# 그러면 P2E는 어떻게 되는 거죠?

 

2022년, 돈 버는 게임, 이른바 P2E(Play To Earn), P&E(Play And Earn)가 뜨거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헌재의 합헌 의결을 게임법을 바꾸어, P2E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번 결정에서 위헌, 내지는 소수의견만 나왔어도 향후 신 사업의 정당성을 대변하는 레토릭으로 쓸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헌재는 게임을 플레이해서 그것으로 돈을 벌(Earn) 수 있다면, 그것은 위법행위가 맞고 현행 법의 규정이 옳다고 확인했다.

헌재는 게임물을 통해 현금을 환전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서 "게임물의 유통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도리어 P2E를 "건전한 게임문화를 훼손"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알려진 바와 같이, P2E에 대한 각계의 입장은 천차만별이다. 주무 부처와 산하 기관의 온도 차이까지 느껴진다. (지면을 할애한다고 할 수는 없으니) 데이터를 할애해서라도 길게 정리해보려 한다.

임기 종료를 앞둔 문체부 황희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P2E에 대해 "제도가 기술과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미래산업을 선점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가 규제를 집중 논의하고 준비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속 산하 기관 게관위의 김규철 위원장은 지난달 세미나에서 P2E에 대해 "작년 4월부터 지금까지 8개월 동안 게임 형태를 보면 위험한 요소가 보인다"라며 "비즈니스 모델(BM​)이라고 하지만 사실 피해는 멀쩡한 일반 소비자가 입는다, 게임사가 발행한 알트코인으로 거래소에 상장하고 유통한다면 오해를 받을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미르4>로 P2E의 신호탄을 쏜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는 2021년 지스타에서 취재진과 만나서 "게임에서 만들어진 재화가 게임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규정한 게 실제 게임 플레이 여건에 맞는지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P2E 카드게임 <실타래>를 만드는 이두희 대표는 기자와 만나서 "P2E가 글로벌에서는 어마어마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규제의 철퇴를 맞은 상황"이라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디스이즈게임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6,324명의 응답 중 59.4%가 P2E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변했다. 부정 답변을 남긴 3,757명의 과반 이상인 57.9%가 '게임이 아니라 노동이나 투기에 가깝기 때문'에 P2E에 부정적으로 본다고 답했다.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 'GDC' 설문조사에 따르면, 게임 개발자의 70%가 NFT 분야에 관심이 없다(Not interested)고 답변했다. 반면에 게이머 57%는 NFT를 도입한 게임이나 P2E 게임에 관심을 보였다.

 

2022년 초 실시된 디스이즈게임의 P2E 설문조사

 

# 게임법만 문제인가?

 

요컨대 2022년 게임사들이 바라는 모델은 과거 BM​에 비해 상당히 복잡하다. 가상화폐(코인, 토큰)을 발행하여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얻은 성과를 그것으로 지급할 수 있게 하고 그 과정에서 몇 단계의 환전 절차를 거친다.

작금의 P2E가 블록체인과 연계된다면, 그것은 오직 게임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게임사가 별도의 인증을 획득하고,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마친 뒤, 금융당국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

대다수의 블록체인, P2E 사업자들은​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이미 싱가폴에 법인을 차렸다. 국내에서 이미 신고를 마친 기업도 싱가폴에 따로 법인을 냈다. 너도나도 싱가폴에 몰려들자 현지 금융당국은 라인과 카카오의 싱가포르 블록체인 법인 '디지털 결제 토큰' 라이선스 취득 면제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등, 규제 샌드박스 관리에 나섰다. 세계 최대 규모의 바이낸스도 그렇게 ​싱가폴을 떠났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독립 헌법기관에서 게임과 환전에 대한 단호한 결정이 나왔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P2E로 뜨겁게 달아오른 한국 시장에 나타난 찬물 한 바가지가 아닐까 한다. 

이 한 바가지가 마시고 속 차릴 냉수가 될지, 불길을 끄는 소화수가 될지, 넓은 바다 위에 내린 빗물 한 방울에 불과할지는 오직 미래만이 알 것이다. 어떤 방향이든 우리 사회는 지금 이 분야에 대해 보다 많은 토론을 해야 한다.

 

(출처: 픽사베이)

 

# 백 투 더 퓨처: 호랑이해에 또 어떤 일이?

긴 글을 맺기 전에 임인년(2022년)에서 경인년(2010년)으로 돌아가보자. 그해 1월 10일, 대법원은 <리니지> 게임머니를 현금거래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09도7237)

대법원은 "비정상적인 이용으로 (재화를) 얻지 않았다는 전제 아래, 아데나는 환전이 금지된 게임머니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고스톱, 포커와 달리 시간과 노력에 의해서 좌우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이 이익을 개인끼리 거래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게임머니, 아이템 거래 중개로 먹고살던 업체는 간접적으로나마 영업권을 보장받게 되었으니​ 두팔 벌려 환영했다. 노력에 의해 생산된 게임 내 가상 결과를 일종의 획득물로 인정된 사례로 평가받았다.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 간 거래를 한다면, 그 권리를 인정받게 됐다. 당연 매크로나 해킹으로 얻은 게임머니 거래는 여전히 불법 영역으로 남아있다. 어디까지가 매크로 결과물이고 어디까지가 정당한 노력의 산물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2013년, 당시 문화관광부는 사업 목적의 게임 아이템 거래를 금지시켰다. 시행령에 의하면, 사업자가 게임 아이템을 돈을 받고 판매하는 행위는 위법행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기존에 이름난 중개 업체들 빼고, 가상의 획득물을 환전해서 거래할 수 있도록 직접 시스템을 꾸리고 있는 P2E 게임과 업체들이 시행령 적용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출시된 대부분의 MMORPG들은 서비스사 약관에서 현금 거래를 금지 중이다. 사진은 <리니지M>의 현금거래 제제 기준표.

 

# 사족: 두 현인의 메시지

밸브의 게이브 뉴웰은 최근 인터뷰에서 "현재 NFT에 몸담은 사람들 중에는 비즈니스 상대로 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기반 기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고객들을 등쳐먹거나 돈세탁을 하거나, 기타 비슷한 행위를 하려고 기회를 엿볼 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스팀에서 블록체인, NFT 게임은 사실상 퇴출 상태다.

<문명>의 시드 마이어는 NFT에 관한 물음에 "NFT나 메타버스나 다른 아이디어들도 있겠지만, 먼저 여러분이 추구해야 할 것은 게임을 즐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NFT를 게임을 더 깊이 즐길 여러 수단 중 하나로 보고 있었다. DLC나 확장팩의 개념에서 NFT를 이해하는 것인데, 결국 게임이 잘 나온 뒤에야 NFT 도입을 고려해볼 만하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게임 산업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두 현인(賢人)의 메시지야말로 참고할 만한 귀중한 자료일 것이다.

 

지난달 디스이즈게임과 인터뷰를 가진 시드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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