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현악단의 세계적인 명 지휘자로 모든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는 태어날 때부터
불행하게도 아주 심한 근시안으로 악보를 잘 볼 수 없는 약점을 가졌다.
집안이 가난하여 정규 공부는 못했지만
음악을 매우 좋아하여 틈만 나면 스스로 음악에 심취했다.
특히 악기를 잘 다루었다.
그래서 음악으로 성공 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였다.
그는 ´나의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기꺼이 해야 한다.´ 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남이 알면 일에 지장을 줄까봐 혼자 되새기며
더 열심히 노력했다.
그 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첼로 연주자가 되었다.
관현악단의 일원으로 연주할 때마다 눈이 나빠 보면대 위의 총보를
볼 수가 없어서 아예 악보를 통째로 외워 자신의 약점을 덮었다.
그는 모든 악보를 완전히 암기한 후에 연주에 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스카니니는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롯시라는
흥행주가 조직한 가극단 ´롯시 오페라단 및 오케스트라´ 소속으로
첼리스트 겸 부합장 지휘자로 편입되어 브라질로 공연하러 갔다.
이 때 지휘자는 브라질 태생의 레오폴드 미게츠이었고 공연할 곡은
오페라 ´아이다´ 였다.
그러나 레오폴드 미게츠는 가극단과 문제를 일으켜 공연을 앞두고
지휘봉을 던져 버렸다.
공연 직전에 일어난 불의의 사건이라 당황한 가극단은
다급한 나머지 부지휘자를 지휘대에 세웠다.
그러나 청중들의 심한 야유를 받고 물러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부지휘자를 대신하여 합창단의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았으나
합창단 지휘자마저 관중들의 야유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 중에서 그 날 연주한 음악회 프로그램의
작곡들을 음표 하나 빼지 않고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가장 나이 어린 토스카니니뿐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단장과 단원들의 권유로 우여곡절
끝에 그가 임시 지휘자로 단상에 서서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19세밖에 되지 않았다.
토스카니니가 지휘대에 올랐지만 관중들의 야유는 그치지 않았다.
아직 무대에서 지휘하기가 낯설고 어색하여 맨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곧 침착하여 보면대의 악보를 덮어 버렸다.
이때 청중들의 야유는 웅성거림으로 바뀌어 갔지만 그는 단 한번의
리허설도 없이, 그리고 단 한번도 악보를 펼쳐 보지 않고 평소
암기한 악보를 떠올리며 대곡 ´아이다´ 를 완벽히 지휘했다.
관객들의 웅성거림은 점차 침묵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감탄의 함성으로
변해 갔다.
1악장이 끝난 뒤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새로운
마에스트로maestro의 탄생을 아낌없이 축하해 주었다.